언론학회 대학원생 컨퍼런스 소요(逍遙)

This entry was posted by spongetok on Saturday, 13 February, 2010 at

언론학회 대학원생 컨퍼런스 소요(逍遙) (([명사]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



컨퍼런스가 끝났다.
크고 작은 일들이 즐거움을 만끽하는 법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한 없이 드러나는 부족함 속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가는 작업에서 얻은 교훈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자 ” 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였다.

일상 속에서도 수 없이 되뇌이는 말이지만 바깥에서 던져주는 자극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다른 학교의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 확률을 높여준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소모적인 신경전도 벌어지는 것이 감지되는 요즘, 나의 악랄한(?) 모습도 재차 확인되고 있다.

아빠가 며칠전에 나에게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모든 일의 이유를 알 필요는 없단다. 이유와 원인을 알려는 순간 피곤해지는 일도 있으니 시덥지 않은 것은 그냥 받아들이도록. ”

그래서 요즘 감지되고 있는 묘한 신경전에 대한 분석은 따로 하지 않고 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내면의 기저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이 정도의 외부자극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자꾸 부딪히는 일 자체가 괜한 스트레스를 만들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사람나고 공부나는 법이지, 공부나고 사람나는 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부터 되고나서 공부를 해야지 덜 된 인간이 공부한다고 해뵜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느끼고 있다.

얕은 지식으로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주변에 참 많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익힐 수 없는 바, 현실과 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쯤은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그 것이 섣부른 선무당 짓거리를 용인하는 면죄부처럼 받아들여져선 곤란하다.

세상 속에 섞여들어 가면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워갔다. 내가 가진 것 아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편이 편했다. 내면은 점점 복잡해져 갔고 외부의 세상은 지극히 단조로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면은 단조로워지고 바깥 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다. 철이 든 것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많은 일들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하나의 ‘나’를 이루었다. 철 모르던 시절의 경험도 소중하다. 내면이 복잡하던 그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행운이었다. 부모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 당시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들이 나에게 주어진만큼 언젠가는 세상 속에 조금이라도 돌려주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여러 방법을 고민한 결과,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일이 공교롭게도(?) 공부를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아버지의 걱정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정도의 걱정은 어느 부모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공부를 뜯어 말리지는 않으시는데, 글쎄 그 이유가 “공부가 잘 맞는 것 같고, 할 일 없어서 도망가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더라” 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박장대소 했다. 도망치는 것이라면 다른데로 도망쳤을 것이다. 대학원은 도망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학원 생활 1년이 지났다. 공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다. 그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공부를 해야만하는 나만의 뚜렷한 목적과 스승님들의 멘토링 덕분이다.

첫 학기는 탐색전의 시간으로 더욱 나를 드러내지 않았다. 나도 그들을 겪고 그들도 나를 겪었다. 나는 조교를 할 수 없는 신분이라 대학원 행정일과 연구소일을 맡았는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차라리 장학생보다 조교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지도교수 선택의 자유가 있었지만 첫 학기 모시는 선생님 없었던 나는 왠지 모르게 방치된 것처럼 느껴졌다. 알게 모르게 지도교수 끗발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나를 매우 초라하게 만들었다. 첫 학기의 쎈 경험이 적응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본과생 프리미엄(?)으로 선배가 이끌어 주기도 했으니 대학원 정착은 어려움 속에서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첫 학기 끝 무렵 지도교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강력한 투구를 장착했다고 말한다. 글쎄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좋은 투구도 다 소용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투구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하다. 나는 그 내공을 쌓고 싶어서 지금의 스승님 밑에 있고 싶었다. 조교가 아닌 석사 제자는 그만 받을 계획이라고 하셨지만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했다. 대학원 첫 방학이 시작될 무렵 스승님과 나눈 짧은 전화통화는 내가 진짜로 제자가 되긴 되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고 스승님은 나에게 일을 부여하면서 훈련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선생님과 신뢰가 조금씩 쌓여갔다. 그럴수록 왠지 모르게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역설적 느낌도 생겼다. 스승님의 신뢰가 부담스럽게 여겨졌는지 아니면 사소한 실수로 신뢰에 금이 갈까 걱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완벽주의 성향이 그런 망상을 발현시킨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스승님과의 관계가 안정구도에 접어든 것 같다.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대학원 인간관계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모든 사람과 적절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처럼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인간관계란 오묘해서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제 3자의 개입이 의외의 변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비상식적인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중이다. 우선은 최대한 상황을 피하고 있다.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상대할 이유가 없는데 괜시리 피곤한 요즘이다. 정말 소모적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실망했던 적이 어디 하루이틀일인가? 필요에 따라 움직이고, 눈치나 슬슬보고… 내가 끗발 좋은 지도교수 밑에서 신망 두터워 보이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사람도 있다.
이럴 때는 귀 막고 조용히 공부만 하고 싶다. 그냥 마음맞고 좋은 사람들과 공부하면서 지낼란다.
학신 오빠가 미국 가기 전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때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컨퍼런스도 끝났으니 스스로를 재정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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