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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Karl Popper-

Posted by spongetok on Sunday, 19 Jul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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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자유에 대하여

“합리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칼 포퍼라는 철학자이다.

20세기(1902~1994)를 살다 간 칼 포퍼의 이야기는 왠지 친숙한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 온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합리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라고 고백하면서 구시대적 사상에 매달리고 있다고 토로하지만, 합리주의 계몽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의 결과물에 대한 지나친 겸양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가 이해하고 주장하는 합리주의는 다음과 같다.

합리주의자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합리주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문장이 하나 있다.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주장은 철저하게 비이성적이다.

그는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인간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철저히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적 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우리 삶에서 이러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분명 비판적 논의의 태도에는 이성적 태도가 필요하지만, 주고 받기(give and take)라는 인간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다분히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없는 비판적 논의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개인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자아 커뮤니케이션 만으로는 자기 비판에 이르기 어려우며, 자기 비판까지 이르려면 다른 이들의 비판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여러 비판적 논의를 토대로 자기 비판의 과정에 다다랐을 때는 고독하게 자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계몽주의 사상가,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상대를 확신시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야기하는 내내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지적 자주성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를 두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합리적이고 잘 다듬어진 형태의 비판을 유도할 것이다. 설득보다는 상대방을 자극하여 자주적 의견을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자주적 의견의 형성은 계몽주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를 진리에 더 근접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주적 의견은 그 자체로도 존중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의견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름대로 존중을 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가가 상대의 동조를 구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논리 그리고 어쩌면 초등 수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주장을 결코 절대적일 수 없고 논리적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백 퍼센트 확증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여러 가지 논거를 따져보고 어떤 논거가 타당한지, 어떤 주장의 근거가 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의견 형성’에는 ‘자주적 결정’이라는 요소가 포함되는 셈이다. 그 자주적 결정이 한 사람의 의견을 그만큼 인간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만든다.

 

<자유에 대하여, 민주주의로의 안내>

위의 논의는 ‘제1장 자유에 대하여’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염두 해야 할 점이 있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필요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칼 포퍼는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한다.

자유에 대한 사랑과 합리주의 및 계몽주의를 동일시하거나 혹은 그 둘이 매우 가까운 관계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확실히 원시적인 것이어서 동물에게도 확인되며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합쳐지면 자유는 문젯거리가 된다. 인류의 공존에는 당연히 ‘모든 개인의 무제한적 자유가 불가능하다’는 뜻이 내포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뭐든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자유롭게 빼앗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로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그렇기 때문에 공존을 위해 필요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며, 그 제한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철학적 원칙인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자유로운 국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칼 포퍼가 제시하는 기준은 이렇다.

국민의 다수가 피를 흘리지 않고 통치자를 물러나게 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정의에 말려들기 보다는 진짜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통일 전 동독도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가까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던가?

맹목적인 자유가 가진 위험성에 대하여…

나는 민주주의 정치 세계를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으로 간주하긴 했지만, 이 사실을 민주주의나 자유의 덕으로 돌리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자유는 생필품을 우리 집 대문까지 날라다주는 공급자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일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기적을 말할 것도 없다. 자유롭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면서 자유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어리석은 일일뿐더러 극히 위험하다. …….. 민주주의나 자유에 대해 단정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인간의 능력이 인류의 복지를 조금 더 좌우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믿음이 항상 승리로 이어진다고 믿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믿음이 패배로 이어질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 자유를 선택하면 그것과 함께 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 ……….. 민주주의와 자유는 일천년을 약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가 이것 또는 저것을 약속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기에 그것을 택한다. 우리가 그 가능성을 깨닫느냐 마느냐는 수많은 요소에 달려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전에 태어난 할아버지가 마치 우리가 처한 현재의 문제에 대해 나긋나긋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칼 포퍼의 논리와 통찰력에 압도당해 허우적 거리는 내 모습이 참 즐겁기도 하고 골치가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실로 나 자신부터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편협하고 맹목적으로 바라보았으며, 어쩌면 그에 대한 책임을 처절하게 배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낸 것이며, 끊임없는 비판적 논의, 자기 비판, 성찰, 반성이 그 자유를 지속시키는 근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Posted by spongetok on Wednesday, 10 June, 2009

자유는 이성적 사유를 기반으로 한 고귀한 인간의 추구 행위

방종은 망나니 감정으로 꼴깝떠는 짓…(배려없는 쓰레기 짓…)

진정한 자유는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고…
철저히 이성적이다…

요즘 안팎으로 깝깝해 죽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생각만 많은 것 같다…
어제 아침에 생각 정리를 위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정도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스피노자와 국가의 궁극적 목적

정치체제 설립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함도 아니며, 억압하거나, 다른 이의 굴레 아래 종속시키고자 함도 아니다. 이러한 체제를 통해 우리가 목표하는 바는 두려움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고자 함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가 가능한 한 안전하게 살도록 하고자 함이다. 달리 말하면 각자가 살아가면서 어떤 행위를 완수할 자연적인 권리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도록 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목표는 이성적인 인간을 꼭두각시로 변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정치단체의 목표는 바로 자유다.

스피노자 <신학 정치론>
사유의 자유는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고 침해할 수 없는 자연권이다. 그러나 이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제한하면서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전제정치 제도는 질서를 보장함에도 불고하고 백성들이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금지시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장 극단적 폭력을 사용하는 이 체제는 전적으로 배격해야 하는 대상이다. 인간을 돌보는 정치 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의 존중이다. 이러한 존중은 각자 사유하고 발언하며 자신의 생각을 알릴 권리가 있음을 내포한다.

인간 본성의 내재적인 자유는 개인의 능력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자유가 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허용하는 정치체제라는 제도가 전제된다. 철학적 사유가 민주주의와 동시에 태어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보호하는 일은 철학자의 책임에 속한다. 표현하지도 교류하지도 않는 사유는 그 자신의 감옥이 될 우려가 높다.

-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4장 자유는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가? 中-

대한민국의 현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상황이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감정적인 대응만 오고 간다는 것이다…

입만 살아서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는데 그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치인이 인간이 될 확률은 정자가 인간이 될 확률보다 낮아… 그러니까 정치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 인간이 아니야…

이번학기 마지막 수업 교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내 생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들이 인간이 되길 기대하기보다 포기하는게 빠를수도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권모술수에만 능숙한 현실…

자유를 부르짖는 여론조차도 감정에 휩쓸리는데 그치고 있는 것… 그것도 슬프다…
감정이 도화선이 될 수는 있다 치더라도…
이성적 기반이 없으면 모래 위에 빌딩 세우는 꼴이니까…

충분한 이성적 논의가 이루어졌는가? 글쎄…

여기저기를 봐도 참 감정적이다…
비난하고 욕하고 지적만 하는것… 그건 참 쉽다…
하지만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깊이 있는 성찰은 결여되어 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1차적인 부분이다…
인식만 했다고 그걸로 결집된 사람들끼리 서로 면죄부를 주기 바쁘다…
이것이 나를 무지무지 슬프게 한다…

감정에 이끌려 결집되었다가 또 그 감정이 식어버리면 모래처럼 흩어져버리는 것 매번 반복되고 있다…

모든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이성적 합의와 조율이 필요하다…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의한 결집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개인의 감정과 감정 사이에 이성적 합의라는 다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참 간절하기만 하다…

민주주의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정치적 자유에 공헌하라 !

쏟아지는 정보에 어쩔 줄 모르는가? 깨어나라. 혼란스러우면 자유롭게 생각하는 데 방해가 된다.

안전이 정치의 근본이고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가? 자유는 어디로 가게 될지 그대 자신에게 물어보라.

권력에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실현하는 데는 무관심한 민주주의에 질문해보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그러나 그대는 그저 모범 답안에 따라 답할 뿐이다.!

돈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그러나 돈은 사물에 다가가게 해주지, 그대 자신에게 다가가게 해주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좋아하는가? 주의하라. 자유로운 사유는 질서정연한 사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안에서 계속 살기 원한다면 경계수위를 높여라!

그대가 자유에 대해 내리는 정의는 개인주의적인가? 주의하라. 자유는 공동의 선이다!

-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4장 자유는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가? 中-

자유는 공동의 선(common good)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나만을 위한 자유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유…

진정한 자유는 산발적 잡생각 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토당토 않은 산발적 잡생각을 자유로 착각하지 말지어다..

자유는 이성에 기반한 질서정연함(cosmos) 그 자체다…

나도 우리도 모두 좀 더 질서정연할 필요가 있다…

Sake for self-healing

Posted by spongetok on Friday, 22 May, 2009
한동안 잠잠했던 행동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생각을 해소하기 위한 글쓰기 행위…

그렇다…감정적으로 난 지쳐있다…

3주 전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 한권을 샀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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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네 안에 네가 있으니 네 자신을 향해 길을 떠나면 삶이 네게 길을 보여준다.”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수 있을까…

내 안의 나에게 삶의 길을 묻는다…

“대체 난 어찌 해야 되는 것이오?”

알면서도 묻는다… 재차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

하지만 나만을 이해하기 위한 이기심 때문은 아니다…

사람은 함께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이는 바로 그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내버려두어야 하는 이도 바로 그대.
자신의 사유에 대해 움직임을 기록해야 하는 이도 바로 그대.
더 나은 삶을 위해 의미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도 바로 그대.

- 독자를 위한 전언 中 -

철저히 스스로를 관찰하되, 그 목적이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나만을 위한 것에 그치는 순간…그 것은 개똥철학으로 전락한다…
철학을 빙자한 미성숙한 사유는 벗어던지자…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때로는 자가당착과 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하지만,
성숙한 철학적 사유는 적어도 그것이 수치스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

더 나은 삶을 모색한다는 말은 연대해서 함께 건설한다는 뜻이다.
말하는 일을 배우면서 동물의 침묵에서 벗어나기. 언제나 전부 다시 시작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배우고 전하기, 고독으로 인한 괴로움을 덜기 위해 공동의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기. …………이렇게 관계를 맺고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 사회의 특징이다.

-서문,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 中-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그 속에서 때로는 인내를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얻기도 한다…

나 혼자 뭐든 다 할 수 있어… 편협함에 빠진 자여…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속히 깨닫기를… 인간이 하는 모든 것에 완벽이란 어려운 일이고, 축적된 지식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완전함을 추구할 뿐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나에게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치기 어린 시절이여 안녕…

나 자신의 정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는 법
그래 물러나자… 그리고 기다리자…나를 이해하자…또 너를 이해하자…우리를 이해하자…

모순을 받아들여라

비극적 필연 속에 있는 것을 사랑하라
바꾸지 못하는 것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받아들여라
모순은 그대 존재의 한가운데 있으니 피하지도 말고 도망가지도 마라
그대를 끌고가면서, 그대를 소진시키면서, 그대를 죽이면서 시간은 그대 안의 삶을 괴롭히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불행이 그대의 문을 두드릴 때, 시간이 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시간은 그대를 사랑하는 이들과 갈라놓은 것이니 불멸을 열망하지 말고 그저 사랑하라
기억이 그대를 이미 지나간 것에 묶어놓으면 기억을 멀리하라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품고 있는 법이니 기대도 멀리 하라
공허에 대한 두려움을 경계하라, 두려움은 허상을 불러오기에

시간에 소진되는 삶의 부조리에 짓눌리는가? 무의미를 감당하고 거기 계속 있어라!
세계의 불투명함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가? 밤이 없으면 새벽빛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세계의 침묵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가? 하지만 침묵하는 존재는 그대에게 귀 기울여 들을 자유를 준다!
연달아 오는 어려움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가? 오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감당하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순에 괴로운가? 그러나 이러한 긴장이야 말로 인간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불행이 삶의 시간을 앗아가는가? 불행의 손을 잡으면 그대를 안내한다!
그대의 현재를 침식하면서 그대를 죽음으로 끌고가는 질병에 시달리는가?
죽어가는 삶을 사랑하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행한 현실을 몰아내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듣는다.
“삶을 사랑한다는 말이 죽음으로 이끄는 시간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한 까닭은 삶은 죽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몬느 베이유와 우리가 시간과 맺는 모순적인 관계 中-

책의 큰 흐름은…이렇다…

1. 나에 대한 신뢰 기르기
2. 시간을 살기
3.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4. 자유를 훈련하기
5. 죽음에 익숙해지기
6. 사랑을 위해 살기
7. 존재의 기쁨 만들기

지친 나에게 주는 작은 자유와 작은 위로…

상황은 나에게 생각할 일말의 틈도 주지 않는다…
내 개인적 사유… 지금은 사치스럽다…
크고 작은 일들이 몰린다…
(학교일, 틈틈이 도울 자잘자잘한 행사들, 수업준비하기…)
6월 중순까지 나를 바쁘게 굴린다…
그리고 난 파업을 할 것이다…

그래도 공부가 업이라 책은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좋은 것 같다;;;

[Book] How We Die –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

Posted by spongetok on Monday, 6 October, 2008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카테고리 건강/의학
지은이 셔윈 B. 뉴랜드 (세종서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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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We Die –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고찰하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삶의 욕구를 자극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유명인들이 자살이 자주 벌어지는 요즘이다… 나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내가 가야할 길을 명확히 찾는 길 삶의 방향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그 방향을 잃었을 때, 아마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을 해보지만… 나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누구나 살다보면 방향을 잃고 휘청거릴 때가 있다…. 그것이 물리적인 문제 때문이건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건… 과연 이 세상 사는 사람 중에 고민 없고 각자의 사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은 슬기롭게 대처(manage)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이 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나를 포용할 만한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나름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내가 처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11살 때였다…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깊은 구덩이 속에 관이 하나 있었고 내가 그 속에 있었다… 꿈적도 할 수 없음을 느낀 순간 내 등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꿈이 아니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내 생각이 머리 속에 그려진 것이다…너무도 강렬한 상상이었다… 아직까지 생생할 정도니 말이다…죽는 다는 것이 뭔가 억울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하긴 11살 꼬마에게는 억울할 법도 하다…
  • 잘 죽는 방법은? 잘 살면 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5년 사는 동안 죽음에 대한 경험이 단기간에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많은 것 같다…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무엇이다 명확한 결론은 없다…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죽음은 삶의 완성체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죽음은 생각과 행동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순간이다”  Synchronize의 의미)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한 문장이 채 완성되지 않는 얼토당토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당장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마침표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사람은 늙어야만 죽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방법도 참 다양하다… 예측불가능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측가능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져서 어차피 죽는 인생 아무렇게나 살아버린다면 그건 정말 아니다…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종교적인 면은 다 떼어 내놓고 생각해보면, 한번 왔다가 가는 삶이다(사후 세계는 정말 모르겠다;;). 죽음에 다다랐을 때 후회없이 또 기탄없이, 세상과 아쉬움 없이 떠날 준비가 된 삶, 그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또 끊임없이 생산되는 정보를 통해 지식을 확장하는 일이 한 개인으로서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것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또 나로 인해 세상이 아름다워 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때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힘든 상황에도 직면할 것이다… 그런 것 또한 극복하고 나면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고 죽음이라는 완성체에 다다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게다… 꽃이 겨울을 이기고 봉우리를 터뜨리고 만개 한 뒤 지듯, 자연 속의 사람도 똑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끝을 향해 성숙,숙성(?)되는 과정의 연속… 사실 꽃도 피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도 그렇겠지…이왕이면 만개의 절정을 뿜어내고 지는 삶이 좋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꽃이 겨울을 이겨내듯, 우리에게도 삶의 어려움을 이기는 내공이 필요한 것 같다…
  •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다… 첫번째 부분인 심장이 어떻게 고장이 나고 멎으면 사람이 죽는지, 두번째 부분인 늙으면 어떤 과정을 통해 죽는지까지 읽었다… 앞으로 알츠하이머 질환, 살인, 자살, 안락사, 에이즈, 암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것이 남아 있다…또 결론 죽음이 주는 교훈….갈 길이 참 멀다… 무거운 내용의 책이라 마음이 들떴을 때는 들춰보지 않아서 진도가 느린 듯 하지만…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3년여 전쯤에도 이 책을 펼쳤다가 끝내지 못했지만…이제는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양만큼 읽었으니 그 성과가 있다고 본다…


     
  • 인상 깊은 구절들 – 평소 내 생각들과 일치되는 구석이 많다

    - 다만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모든 학식이나 지식이 좀 더 현명하게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사실 ‘생의 젊음’을 찾거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부질 없는 짓으로, 결국 우리의 품위만 떨어뜨릴 뿐이다. 결코 명예로운 일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한 번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는다. 아니 죽음으로써 새로이 교체되어야만 한다. 죽음의 손을 뿌리칠 수 있다는 환상은 인류 발전의 영속성과는 양립할 수 없다. 더 정확히 표현해서 우리의 영생이 우리 자녀들의 권익과 양립할 수 없다는 얘기다. 테니슨도 이런 면에선 뜻을 분명히 했다.“나이든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에는 곰팡이만 자라나고 과거만 되풀이 될 것이다.” ( 이 구절을 늙은 사람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젊은이의 눈을 통해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고,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재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때서야 비로서 그들은 우리들이 지나갔던 수렁에 빠지지 않게 된다. 새 세대들은 스스로를 개선하기를 열망하고, 바로 그 과정에서 인류를 위해 크게 공헌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살아 있는 생물체들에 있어서, 때가 되어 죽음으로써 생의 무대를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노령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요, 이 세상을 자손들을 위해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삶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과정인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진취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한 삶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미리부터 늙었다고해서 아예 뒷전으로 물러나 앉으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영과 육의 활달한 운동은 살아있는 순간을 강화시켜줄 수 있고, 나이보다 더 늙게 마음과 육체를 변화시키는 ‘이탈’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 우리가 인간답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문제는 그러한 구성 요소들을 부정하고 물리치려는 헛된 시도이다.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가슴을 해쳐선 안 된다. 생에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은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모든 즐거움과 성취감 그리고 고통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의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연이 내린 한계를 억지로 뛰어 넘으려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틀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과의 정상적인 교감과 교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젊은이들의 자원과 진취적 기상을 침범해 그 들로 부터 원망을 듣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중 스스로 보람있고 남들로부터 칭송받을 수 있는 시간은 사실 별로 길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소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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