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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Karl Popper-

Posted by spongetok on Sunday, 19 Jul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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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자유에 대하여

“합리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칼 포퍼라는 철학자이다.

20세기(1902~1994)를 살다 간 칼 포퍼의 이야기는 왠지 친숙한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 온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합리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라고 고백하면서 구시대적 사상에 매달리고 있다고 토로하지만, 합리주의 계몽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의 결과물에 대한 지나친 겸양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가 이해하고 주장하는 합리주의는 다음과 같다.

합리주의자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합리주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문장이 하나 있다.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주장은 철저하게 비이성적이다.

그는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인간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철저히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적 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우리 삶에서 이러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분명 비판적 논의의 태도에는 이성적 태도가 필요하지만, 주고 받기(give and take)라는 인간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다분히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없는 비판적 논의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개인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자아 커뮤니케이션 만으로는 자기 비판에 이르기 어려우며, 자기 비판까지 이르려면 다른 이들의 비판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여러 비판적 논의를 토대로 자기 비판의 과정에 다다랐을 때는 고독하게 자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계몽주의 사상가,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상대를 확신시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야기하는 내내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지적 자주성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를 두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합리적이고 잘 다듬어진 형태의 비판을 유도할 것이다. 설득보다는 상대방을 자극하여 자주적 의견을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자주적 의견의 형성은 계몽주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를 진리에 더 근접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주적 의견은 그 자체로도 존중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의견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름대로 존중을 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가가 상대의 동조를 구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논리 그리고 어쩌면 초등 수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주장을 결코 절대적일 수 없고 논리적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백 퍼센트 확증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여러 가지 논거를 따져보고 어떤 논거가 타당한지, 어떤 주장의 근거가 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의견 형성’에는 ‘자주적 결정’이라는 요소가 포함되는 셈이다. 그 자주적 결정이 한 사람의 의견을 그만큼 인간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만든다.

 

<자유에 대하여, 민주주의로의 안내>

위의 논의는 ‘제1장 자유에 대하여’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염두 해야 할 점이 있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필요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칼 포퍼는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한다.

자유에 대한 사랑과 합리주의 및 계몽주의를 동일시하거나 혹은 그 둘이 매우 가까운 관계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확실히 원시적인 것이어서 동물에게도 확인되며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합쳐지면 자유는 문젯거리가 된다. 인류의 공존에는 당연히 ‘모든 개인의 무제한적 자유가 불가능하다’는 뜻이 내포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뭐든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자유롭게 빼앗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로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그렇기 때문에 공존을 위해 필요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며, 그 제한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철학적 원칙인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자유로운 국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칼 포퍼가 제시하는 기준은 이렇다.

국민의 다수가 피를 흘리지 않고 통치자를 물러나게 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정의에 말려들기 보다는 진짜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통일 전 동독도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가까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던가?

맹목적인 자유가 가진 위험성에 대하여…

나는 민주주의 정치 세계를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으로 간주하긴 했지만, 이 사실을 민주주의나 자유의 덕으로 돌리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자유는 생필품을 우리 집 대문까지 날라다주는 공급자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일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기적을 말할 것도 없다. 자유롭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면서 자유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어리석은 일일뿐더러 극히 위험하다. …….. 민주주의나 자유에 대해 단정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인간의 능력이 인류의 복지를 조금 더 좌우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믿음이 항상 승리로 이어진다고 믿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믿음이 패배로 이어질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 자유를 선택하면 그것과 함께 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 ……….. 민주주의와 자유는 일천년을 약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가 이것 또는 저것을 약속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기에 그것을 택한다. 우리가 그 가능성을 깨닫느냐 마느냐는 수많은 요소에 달려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전에 태어난 할아버지가 마치 우리가 처한 현재의 문제에 대해 나긋나긋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칼 포퍼의 논리와 통찰력에 압도당해 허우적 거리는 내 모습이 참 즐겁기도 하고 골치가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실로 나 자신부터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편협하고 맹목적으로 바라보았으며, 어쩌면 그에 대한 책임을 처절하게 배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낸 것이며, 끊임없는 비판적 논의, 자기 비판, 성찰, 반성이 그 자유를 지속시키는 근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Emerson String Quartet – Mendelssohn Octet op.20

Posted by spongetok on Friday, 10 July, 2009

mendelssohn

멘델스존 현악 4중주 전곡이 수록된 4장짜리 앨범이다…

4번째 CD에는 멘델스존 8중주(Octet)도 녹음되어 있는데,

이 녹음 방법이 특이하게도 8중주를 4중주로 두번에 나누어 녹음을 하고 다시 합친 것이다…

그러니까 에머슨 콰르텟 주자 네명으로 8중주 녹음을 한 셈이다…

이런 특이한 점이 들을 때마다 내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결과적으로는 옥텟으로 완성되어 내가 듣고 있기는 하지만,

반쪽짜리 녹음 위에 나머지 반쪽을 얹어 놓은 것이라 분명 8명이 한데 모여 내는 소리와 맥락적으로 다른 상황이었을테니 말이다…

한 연주자가 두 파트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내면에서의 자아 커뮤니케이션(intrapersonal communication)은 하나의 파트를 연주할 때 보다 더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음반을 통해서 듣는 행위 자체가 연주자(메시지를 보내는 쪽)와 듣는 사람(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쪽)의 비동시적인 커뮤니케이션 상황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연주상황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 상황을 자꾸 상상하게 만들고 흥미롭기만 하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YouTube를 돌아다니다가 이 녹음의 연주 상황에 대한 비디오클립을 찾았다 !!
Eureka !!!


즐겁게 녹음하는 모습이 보기가 참 좋다 ^^

Key word로 읽는 언론학 이론 워크숍

Posted by spongetok on Thursday, 9 July, 2009

▶ 목적 : 언론학 이론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좀 더 정교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핵심어 논의


▶ 방법 및 대상

- 방법 : 매회 2명씩 두 개의 Key word 발표 2시간씩

- 대상 : 대학원생 및 교수


▶ 일시 및 장소

- 일시 : 2009년 6월 25일(목)부터 7월 30일(목)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6시

- 장소 :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지하철 2, 8호선 잠실역(2호선 7번 출구) 도보 3분 거리)

- 비용 : 무료


▶ 일정

Key word

강사

일시

장소

1차 언론학 이론 워크숍

공정성(fairness)

이준웅(서울대)

2009. 6. 25(목)

2:00~4:00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공익성(public interests)

강형철(숙명여대)

2009. 6. 25(목) 4:00~6:00

2차 언론학 이론 워크숍

상호작용성(interactivity)

박성복(한양대)

2009. 7. 2(목) 2:00~4:00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공론영역(public sphere)

이상길(연세대)

2009. 7. 2(목) 4:00~6:00

3차 언론학 이론 워크숍

프레젠스(presence)

정동훈(광운대)

2009. 7. 9(목) 2:00~4:00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미디어의례(media ritual)

이기형(경희대)

2009. 7. 9(목) 4:00~6:00

4차 언론학 이론 워크숍

집중(concentration)

조은기(성공회대)

2009. 7. 16(목) 2:00~4:00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가상성(virtuality)

김예란(광운대)

2009. 7. 16(목) 4:00~6:00

5차 언론학 이론 워크숍

시공간(chronotope)

이재현(서울대)

2009. 7. 23(목) 2:00~4:00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재매개(remediation)

김상호(대구대)

2009. 7. 23(목)

4:00~6:00

6차 언론학 이론 워크숍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

정윤경(순천향대)

2009. 7. 30(목) 2:00~4:00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헤게모니(hegemony)

이상훈(전북대)

2009. 7. 30(목) 4:00~6:00

문의 및 안내

언론학회 사무국 : 02-762-6833/723-8350, office@comm.or.kr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Posted by spongetok on Wednesday, 10 June, 2009

자유는 이성적 사유를 기반으로 한 고귀한 인간의 추구 행위

방종은 망나니 감정으로 꼴깝떠는 짓…(배려없는 쓰레기 짓…)

진정한 자유는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고…
철저히 이성적이다…

요즘 안팎으로 깝깝해 죽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생각만 많은 것 같다…
어제 아침에 생각 정리를 위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정도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스피노자와 국가의 궁극적 목적

정치체제 설립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함도 아니며, 억압하거나, 다른 이의 굴레 아래 종속시키고자 함도 아니다. 이러한 체제를 통해 우리가 목표하는 바는 두려움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고자 함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가 가능한 한 안전하게 살도록 하고자 함이다. 달리 말하면 각자가 살아가면서 어떤 행위를 완수할 자연적인 권리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도록 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목표는 이성적인 인간을 꼭두각시로 변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정치단체의 목표는 바로 자유다.

스피노자 <신학 정치론>
사유의 자유는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고 침해할 수 없는 자연권이다. 그러나 이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제한하면서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전제정치 제도는 질서를 보장함에도 불고하고 백성들이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금지시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장 극단적 폭력을 사용하는 이 체제는 전적으로 배격해야 하는 대상이다. 인간을 돌보는 정치 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의 존중이다. 이러한 존중은 각자 사유하고 발언하며 자신의 생각을 알릴 권리가 있음을 내포한다.

인간 본성의 내재적인 자유는 개인의 능력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자유가 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허용하는 정치체제라는 제도가 전제된다. 철학적 사유가 민주주의와 동시에 태어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보호하는 일은 철학자의 책임에 속한다. 표현하지도 교류하지도 않는 사유는 그 자신의 감옥이 될 우려가 높다.

-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4장 자유는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가? 中-

대한민국의 현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상황이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감정적인 대응만 오고 간다는 것이다…

입만 살아서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는데 그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치인이 인간이 될 확률은 정자가 인간이 될 확률보다 낮아… 그러니까 정치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 인간이 아니야…

이번학기 마지막 수업 교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내 생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들이 인간이 되길 기대하기보다 포기하는게 빠를수도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권모술수에만 능숙한 현실…

자유를 부르짖는 여론조차도 감정에 휩쓸리는데 그치고 있는 것… 그것도 슬프다…
감정이 도화선이 될 수는 있다 치더라도…
이성적 기반이 없으면 모래 위에 빌딩 세우는 꼴이니까…

충분한 이성적 논의가 이루어졌는가? 글쎄…

여기저기를 봐도 참 감정적이다…
비난하고 욕하고 지적만 하는것… 그건 참 쉽다…
하지만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깊이 있는 성찰은 결여되어 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1차적인 부분이다…
인식만 했다고 그걸로 결집된 사람들끼리 서로 면죄부를 주기 바쁘다…
이것이 나를 무지무지 슬프게 한다…

감정에 이끌려 결집되었다가 또 그 감정이 식어버리면 모래처럼 흩어져버리는 것 매번 반복되고 있다…

모든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이성적 합의와 조율이 필요하다…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의한 결집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개인의 감정과 감정 사이에 이성적 합의라는 다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참 간절하기만 하다…

민주주의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정치적 자유에 공헌하라 !

쏟아지는 정보에 어쩔 줄 모르는가? 깨어나라. 혼란스러우면 자유롭게 생각하는 데 방해가 된다.

안전이 정치의 근본이고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가? 자유는 어디로 가게 될지 그대 자신에게 물어보라.

권력에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실현하는 데는 무관심한 민주주의에 질문해보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그러나 그대는 그저 모범 답안에 따라 답할 뿐이다.!

돈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그러나 돈은 사물에 다가가게 해주지, 그대 자신에게 다가가게 해주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좋아하는가? 주의하라. 자유로운 사유는 질서정연한 사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안에서 계속 살기 원한다면 경계수위를 높여라!

그대가 자유에 대해 내리는 정의는 개인주의적인가? 주의하라. 자유는 공동의 선이다!

-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4장 자유는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가? 中-

자유는 공동의 선(common good)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나만을 위한 자유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유…

진정한 자유는 산발적 잡생각 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토당토 않은 산발적 잡생각을 자유로 착각하지 말지어다..

자유는 이성에 기반한 질서정연함(cosmos) 그 자체다…

나도 우리도 모두 좀 더 질서정연할 필요가 있다…

Sake for self-healing

Posted by spongetok on Friday, 22 May, 2009
한동안 잠잠했던 행동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생각을 해소하기 위한 글쓰기 행위…

그렇다…감정적으로 난 지쳐있다…

3주 전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 한권을 샀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상세보기

책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네 안에 네가 있으니 네 자신을 향해 길을 떠나면 삶이 네게 길을 보여준다.”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수 있을까…

내 안의 나에게 삶의 길을 묻는다…

“대체 난 어찌 해야 되는 것이오?”

알면서도 묻는다… 재차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

하지만 나만을 이해하기 위한 이기심 때문은 아니다…

사람은 함께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이는 바로 그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내버려두어야 하는 이도 바로 그대.
자신의 사유에 대해 움직임을 기록해야 하는 이도 바로 그대.
더 나은 삶을 위해 의미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도 바로 그대.

- 독자를 위한 전언 中 -

철저히 스스로를 관찰하되, 그 목적이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나만을 위한 것에 그치는 순간…그 것은 개똥철학으로 전락한다…
철학을 빙자한 미성숙한 사유는 벗어던지자…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때로는 자가당착과 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하지만,
성숙한 철학적 사유는 적어도 그것이 수치스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

더 나은 삶을 모색한다는 말은 연대해서 함께 건설한다는 뜻이다.
말하는 일을 배우면서 동물의 침묵에서 벗어나기. 언제나 전부 다시 시작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배우고 전하기, 고독으로 인한 괴로움을 덜기 위해 공동의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기. …………이렇게 관계를 맺고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 사회의 특징이다.

-서문,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 中-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그 속에서 때로는 인내를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얻기도 한다…

나 혼자 뭐든 다 할 수 있어… 편협함에 빠진 자여…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속히 깨닫기를… 인간이 하는 모든 것에 완벽이란 어려운 일이고, 축적된 지식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완전함을 추구할 뿐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나에게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치기 어린 시절이여 안녕…

나 자신의 정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는 법
그래 물러나자… 그리고 기다리자…나를 이해하자…또 너를 이해하자…우리를 이해하자…

모순을 받아들여라

비극적 필연 속에 있는 것을 사랑하라
바꾸지 못하는 것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받아들여라
모순은 그대 존재의 한가운데 있으니 피하지도 말고 도망가지도 마라
그대를 끌고가면서, 그대를 소진시키면서, 그대를 죽이면서 시간은 그대 안의 삶을 괴롭히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불행이 그대의 문을 두드릴 때, 시간이 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시간은 그대를 사랑하는 이들과 갈라놓은 것이니 불멸을 열망하지 말고 그저 사랑하라
기억이 그대를 이미 지나간 것에 묶어놓으면 기억을 멀리하라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품고 있는 법이니 기대도 멀리 하라
공허에 대한 두려움을 경계하라, 두려움은 허상을 불러오기에

시간에 소진되는 삶의 부조리에 짓눌리는가? 무의미를 감당하고 거기 계속 있어라!
세계의 불투명함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가? 밤이 없으면 새벽빛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세계의 침묵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가? 하지만 침묵하는 존재는 그대에게 귀 기울여 들을 자유를 준다!
연달아 오는 어려움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는가? 오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감당하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순에 괴로운가? 그러나 이러한 긴장이야 말로 인간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불행이 삶의 시간을 앗아가는가? 불행의 손을 잡으면 그대를 안내한다!
그대의 현재를 침식하면서 그대를 죽음으로 끌고가는 질병에 시달리는가?
죽어가는 삶을 사랑하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행한 현실을 몰아내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듣는다.
“삶을 사랑한다는 말이 죽음으로 이끄는 시간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한 까닭은 삶은 죽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몬느 베이유와 우리가 시간과 맺는 모순적인 관계 中-

책의 큰 흐름은…이렇다…

1. 나에 대한 신뢰 기르기
2. 시간을 살기
3.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4. 자유를 훈련하기
5. 죽음에 익숙해지기
6. 사랑을 위해 살기
7. 존재의 기쁨 만들기

지친 나에게 주는 작은 자유와 작은 위로…

상황은 나에게 생각할 일말의 틈도 주지 않는다…
내 개인적 사유… 지금은 사치스럽다…
크고 작은 일들이 몰린다…
(학교일, 틈틈이 도울 자잘자잘한 행사들, 수업준비하기…)
6월 중순까지 나를 바쁘게 굴린다…
그리고 난 파업을 할 것이다…

그래도 공부가 업이라 책은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좋은 것 같다;;;

힐러리 한- Schubert 마왕(Der Erlkonig)

Posted by spongetok on Friday, 8 May, 2009

볼 때마다 느끼지만 힐러리 한은 참 바이올린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것 같다…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바이올린으로 연주…

이야기의 기승전결, 그리고 목소리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Mozart Sinfonia Concertante K.364 -3악장

Posted by spongetok on Monday, 16 Marc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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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cha Heifetz, Violin, William Primrose, Viola (1956)

외장하드의 음악들을 뒤적여봤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들을 만한 음악을 구하는 지인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나까지도 차분히 앉아서 음악감상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상큼 발랄한 3악장을 올려본다…
현재 내 심리상태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2악장은 내 마음을 왠지 어루만지면서 감성을 너무 자극하는 것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고…
1악장은 그냥 식상해서 패쓰했고…


외장하드 속에는 사랑하는 내 동반자가 아프지 말라고 처방해 준 음악도 들어있고…

뒤적이다보니 참 재미있는 추억들이 속속 숨어있다…

여유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에 치여 사는 모습이 측은하지만…

여전히 소소한 즐거움은 나와 함께 한다…

그리고 간만에 내 감정이 오롯이 담긴 포스팅을 하나 작성했다…ㅋㅋㅋ
(이 짓도 여유가 없다고 한동안 안내켜 하던 일…;;;)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의 리더십…

Posted by spongetok on Tuesday, 23 December, 2008

과제로 인해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과연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만델라 리더십의 8가지 비결을 소개했다.

◇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고무하는 것 = 만델라는 투옥과 재판, 비행기 사고 등 많은 고비를 넘기면서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아 경외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만델라는 실상 자신의 태연함은 가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무섭고 공포스러워도 지도자로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내비쳐선 안됐다는 것.

이러한 태도는 다른 이들이 당당한 모습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선봉에서 이끌되 기반에서 벗어나지 말 것 = 1985년 다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들과 함께 투옥 생활 중이던 만델라는 석방 없이는 협상도 없다는 기존 입장을 버리고 독자적인 협상에 나섰다.

이제 무장 투쟁이 아닌 대화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이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변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 있는 위험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만델라는 인종차별철폐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을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동료들을 일일이 설득, 지지를 되찾을 수 있었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상을 재개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후미에서 이끌어 다른 사람들이 선봉에 있다고 믿게할 것 = 만델라는 소떼를 모는 목동이었던 어린 시절을 예로 들며 “(소떼는) 후미에 서야만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일찍부터 논쟁에 끼어들지 말고 논쟁이 끝을 보일 때 쯤 각자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한 뒤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되 너무 강요하지는 말고 서서히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라는 것.

만델라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도록 설득할 때는 그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그 일을 한다고 믿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 적을 알고 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까지 배울 것 = 다른 흑인 지도자들이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배우는 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던 때 만델라는 오히려 아프리칸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백인들과 싸우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우위에 서려면 상대방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백인들의 역사를 배우고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럭비에도 관심을 붙였다.

이 결과 만델라는 흑인과 백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강점과 약점을 더욱 잘 이해하고 이에 따라 향후의 전술과 행동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 동료들, 특히 라이벌과도 가까이 지낼 것 = 만델라는 오랜 투옥 생활을 끝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자신을 투옥한 사람들과 정치적 라이벌들마저 내각의 일원으로 맞아들였다.

좋아하지도 신용할 수도 없는 동료들이라도 최대한 포용하고 이를 오히려 그들을 조종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만델라의 생각이었다.

밖으로 내쳐 자신의 등을 찌르도록 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것이 낫다는 것.

◇ 외모 관리에 힘쓰고 미소를 잊지 말 것 = 만델라는 ANC의 지하무장조직을 이끌 당시에도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적절한 의상을 입을 것을 고집했고, 항상 위치에 걸맞은 복장을 갖추는 데 신경을 썼다.

199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항상 밝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미소를 짓도록 노력했으며, 유권자들은 이를 고통스런 과거의 청산과 새로운 미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 흑백논리를 버릴 것 = 모든 문제는 다양한 원인을 갖고 있다.

만델라는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었던 미국 정부를 예로 들며 미국인들은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눠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단순한 설명을 원하지만 이는 현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만델라의 지적이다.

결국 목적은 하나지만 수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견지에서 다양한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는 것이야 말로 가장 실용주의적인 태도라는 것.

◇ 그만 두는 것도 리더십 = 자리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은 지도자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종류의 결정이 되기 쉽다.

만델라가 남아공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임기를 마치자마자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훌륭한 선례를 남겼다는 것일 것이다.

1994년 집권에 성공했을 당시 남아공 국민 상당수는 만델라가 감옥에서 보낸 27년간의 세월을 감안할 때 종신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은 최소한의 보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만델라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었다.

엄밀한 '學'으로서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Posted by spongetok on Saturday, 20 December, 2008
  • 기획목적
     
    언론학 연구는 새로운 영역들과
    테크놀로지가 접목되면서 확대되고 있습니다. 언론학 연구의 확장은 새로운 방법론의 개발과 엄밀성을 요구합니다. 한국언론학회는 보다
    엄밀하고 과학적인 연구활동에 기여하고자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은 최근 부상하는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심있는 한국언론학회 회원뿐만 아니라 언론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 장소 :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지하철 2, 8호선 잠실역(2호선 7번 출구) 도보 3분 거리)
  •  비용   :  무료
   주제  발표  일시
 1차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Computer를 활용한 언어분석
-Korean 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KLIWC)를 사용하여
 이창환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2009.1.8 (목) 2시~5시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2차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데이터 분석법 강의: 구조방정식과 위계적선형모델(HLM)을 중심으로  강남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09.1.15 (목) 2시~5시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3차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인터넷 연구방법: 인터넷 서베이의 쟁점/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한 인터넷 연구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성태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2009.1.29 (목) 2시~5시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4차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1) 미디어 사회문화사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2) 구술사 연구방법론: 구술사 자료생산과 사료의 비판적 활용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백미숙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연구교수)
2009.2.5 (목) 2시~5시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5차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미디어 문화 연구와 민속지학적 상상력을 재점화하기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2009.2.12 (목) 2시~5시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6차 언론학
연구방법론 워크숍
 텍스트 분석방법론: 기호학과 담론분석 황인성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09.2.19 (목) 2시~5시
한국광고문화회관 7층 소회의실

  • 문의 및 안내 
         언론학회 김영찬 연구이사 : 011-9720-6702, visualmedia@empal.com
         언론학회 민   영 연구이사 : 010-5752-1839,  ymin@korea.ac.kr
         언론학회 사무국 : 02-762-6833/723-8350, office@comm.or.kr

마르크스 과학

Posted by spongetok on Friday, 19 December, 2008

자본론을 번역한 강신준 교수 인터뷰~ (OhmyNews)

[#M_더보기|접기|"미국발
금융위기, 마르크스로 돌아갈 때
 이명박 '나홀로 신자유주의' 파국맞을 것"

[인터뷰] 마르크스 <자본> 독일어 원본 번역자 강신준
교수

 [증언#1] “나는 틀을 운반하고 도르래를 돌리고 있습니다. 출근 시각은 아침 6시이고
4시에 출근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나는 어제 밤을 새우고 오늘 아침 6시까지 일했습니다. 도자기공은 남녀 모두 육체적·정신적으로 퇴화한
대표적인 계층입니다. 그들은 특히 폐렴·기관지염·천식 등의 폐질환에 잘 걸립니다. 천식 가운데 한 가지 형태는 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것으로 대개 ‘도자기 천식’ 또는 ‘도자기공 폐병’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자기공의 3분의 2 이상이 임파선이나 뼈 또는 그밖의 신체
부분을 침범하는 연주창에 걸려 있습니다.”

[증언#2]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엔 오전·오후
15분씩 쉬는 시간도 없었죠. 작업하다 한눈 파는 것을 막으려고 작업실의 창문도 다 없애버렸어요.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욕을
먹었습니다. 한번은 25년간 칠 작업을 한 노동자가 모세혈관기관지염으로 쓰러졌는데 회사에서는 병원까지 쫓아가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생산직
노동자들의 40%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고, 59%는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직업병이 의심됩니다. 또 36%는 기관지 천식, 40%는
만성기관지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우리 회사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증언#1′은 1863년 영국의 도자기 산업 노동 현장의 실태조사 결과다. 물론 카를 마르크스
<자본>에 서술된 것이다. ‘증언#2′는 2008년 기타를 만드는 한국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만약 마르크스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 <자본>의 개정판을 쓴다면 어떨까. 아마 영국 도자기공들 대신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사례를 <자본>에 넣지 않았을까. 그만큼 1863년 영국 도자기공들과 2008년 기타를 만드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150여 년의 시간차가 무색할 만큼 닮은꼴이다.

 

<자본>을 잉태한 것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죽기 일보 직전까지 노동을 하면서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났지만,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은 한국 사회에서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 이승훈

강신준

“자본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150여년 전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부리는
방식이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당시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는 것이죠. 1929년 이전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복제한 신자유주의가 붕괴하는 상황인데,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54)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독일에서 <자본>의 판매가 급증하고 일본에서 공산당에 가입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150년 전 영국과 너무 닮은 2008년 한국

 

강 교수는 지난 6월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책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냈다. 1987년
익명의 대학생들이 초벌 번역한 자본론 1권의 감수를 맡아 책을 낸 지 20여년 만이었다. 영어판을 번역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자본론(비봉출판사)>보다 2년 앞선 것이었다.

 

당시는 민주화의 기운이 넘쳐흐르던 때였지만 실명 출판은 꿈도 못 꿨고 출판사 ‘이론과실천’ 김태경 사장은 체포돼
검찰에 끌려갔다.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책도 절판되고 말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가끔 ‘불온서적’ 리스트가 작성되는 황당한 일이 없진 않지만 더 이상 <자본>을
번역하거나 공부한다고 감옥을 각오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강 교수는 <자본>을 번역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91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강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산이 풍부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러한 ‘과학의 부족’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이 취약하고 진단했다.

 

  

ⓒ 도서출판길

자본론

“노동운동에 많은 분파가 있는데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습니다. ’차이의 원리’만 작동하고 ‘연대의 원리’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죠. 분파간 대립도 강령에 제시된 운동 목표·수단을 수정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게 다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의 분파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조직일 뿐이라는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면서 노선으로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종북주의 논쟁도 강령 차원은
아니었죠. 두 정당이 강령적 목표나 전술적 수단에 있어서 다른 정당이라고 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부 권력을 어떻게 나눠먹을 것인가를 놓고
갈라섰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분파는 운동세력이라고 할 수 없죠.”

 

강 교수는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혁명은 과학적 논리로 무장해야만 가능하다’는
자각에서 <자본>을 썼다”며 ”진보정당이든 노동운동이든 가장 시급한 과제가 과학적 강령에 기반한 정파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자성을
촉구했다.

 

감옥 안 가도 되는 세상, 그러나 빈약한 마르크스

 

강 교수는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재앙”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산업자본-금융자본 세 이해당사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 구조를
자연상태로 내버려두면 금융자본이 가장 힘이 세지게 됩니다. 그런데 금융자본은 자본주의 기생단계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힘이 가장 세지는
불균형 상태를 내버려두면 자본주의는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경험적으로 나타난 것이 1929년 공황이고 지금의 미국발 공황입니다.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새 생산체제로 넘어가거나, 인위적으로라도 균형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규제해야 하는 것이죠. 케인즈도 했던 것인데 그 핵심이
금융규제와 노사관계 규제입니다. 2008년 세계적으로 이 두가지 규제를 놓고 신브레턴우즈체제를 만들기 위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죠.”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각종 금융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아니다’는 길을 가겠다는 이명박 정부. 마르크스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밝힌 경제법칙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강부자 정책’을 지속하고 싶어도 현재의 물적 조건이 그것을 좌초시킬 것이라는 이야기죠. 자유주의는 구조적으로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반대로 가기 힘듭니다. FTA만 해도 우리만 의지가
있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강 교수는 “이번 신자유주의 붕괴 후 경제 권력이 분산된 다극화된 새로운 경제체제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
경제 구조도 민주화된 체제에 맞춰야 살아남을 수 있고 발전할 텐데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신준 교수와의 인터뷰는 20일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자본>에 대한 강 교수의 설명, 그리고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까지를 망라한
인터뷰 내용을 핵심만 골라서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역사적 맥락을 생략할 경우 이해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길지만 그만큼 가치있는 120분짜리 그의 정치경제학 강의를 한 번 들어보자. 젊은 세대들에 대한 따뜻한
당부도 그대로 옮겼다.

 

앗, <자본> 수업에선 재테크 안 가르쳐주네

 



  

ⓒ 이승훈

강신준

-
정치경제학 수업에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나? 반응은 어떤가?

“한번은 학생 한 명이 ‘재테크 가르쳐주는 과목인 줄 알고 들어왔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 듣고 한참을
웃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어려운 책이다. 흥미가 없으면 공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이러이러한 수업’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맞지 않으면 다른 과목 들으라는 의미에서다. 수업에 70~80명 들어오는 데, 30~40명 정도는
열심히 듣는 편이다. 딱딱한 이론 말고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하려고 한다.”

 

- 독일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본>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크크스에게서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론의 내용을 압축하면 핵심은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 생산의 과잉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생산의
과잉이 생기는 것은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교환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게 주기적으로 누적돼서 터지는 과정의 반복이 경기
순환이다.

 

이 경기순환을 마르크스가 정확히 예측해 놓았다. 이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없다고 했다.
요즘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150년 전 마르크스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여 볼 만하지 않은가.”

 

- 좀 더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를 크게 보면 역사적으로 3개 국면으로 쪼개진다. 초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1929년까지 계속됐다.
시장을 방임 상태로 둔 자유주의 최정점이 독점이었고, 독점이 만들어 낸 것이 공황이었다. 이 공황은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까지 끌어들여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때는 노동자들이 너무 가혹한 착취를 당했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규제하겠다고 나온 것이 뉴딜
정책이고 케인즈주의다. 이것이 1970년대까지 계속된다. 케인즈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타협적인 체제가 오래갈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1970년대
초 미국 경제의 침체와 케인즈주의를 받쳐오던 국제금융체제가 무너지면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이 신자유주의는 초기 자본주의를 거의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도 결국
내부 모순으로 종말을 고하게 됐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간 신자유주의 수정과 새로운 체제 마련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 하지만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실패하면서 퇴물 취급을 받았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논하면서 주의할 것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1889년에 등장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는 레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2인터내셔널이 성공한 이유는
전 세계 노동대중으로부터 민주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이 다음해 행동계획으로 정한 것이 5월 1일 총파업이었고, 그
핵심 요구안이 8시간 노동과 보통선거권이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가지지 못했는데 민주주의가 노동운동을 통해 달성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대혁명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 독재로 갔고 이것을 다시 노동대중의
민주주의로 만드는 것, 부르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것이 사회주의라고 했다. 사회를 완전히 민주화시키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이고 이 운동의 과학적
내용을 담은 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를 서술해놓은 책이 <자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민주주의다.

 

레닌주의도 처음 출발은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배신했다. 물론 역사적 조건이 있었다. 2월혁명 이후
구성된 임시정부의 임무는 몰락한 짜르 체제를 대체할 공화정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제헌의회를 구성해야 했는데 11월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22%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로 갔다.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등장했고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핵심인 것처럼 레닌이 끌어다 썼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던 세력은 모두 1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했다. 제2인터내셔널
전통이 단절되고 소비에트만이 마르크스주의 적법한 계승자로 남게 된 것이다.

 

결국 볼셰비키가 만든 소비에트 정권은 1991년 투표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주의에 의해서 없어진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는 망하고 만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단절됐기 때문에 레닌주의가 무너졌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다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진보진영도 레닌이 아니라 마르크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소비에트 정권은 사망했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유효하다”

 


  

ⓒ 도서출판길

자본론

-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자본주의에는 돈을 주고받는 이해당사자가 세 부류가 있다. 임금노동자·산업자본·금융자본이다. 산업자본은 자기
돈만으로는 사업을 못하기 때문에 금융자본에게 돈을 빌린다. 노동자가 잉여가치를 생산해서 산업자본에게 이윤으로 주면 이중 일부를 금융자본이 이자로
가져가 기생하는 구조다.

 

근데 이 구조를 자유주의적으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될까. 돈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입장을 놓고 보면 당연히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힘이 세게 된다. 이런 불균형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금융자본의 힘이 가장 세진다. 그런데 자본주의 기생단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는 기생계급 금융자본의 힘이 가장 센 이런 구조는 항구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경험적으로 나타난 것이 1929년 공황이고 지금의
공황이다.

 

마르크스의 시각 안에는 자연적으로 내버려두면 필연적으로 공황이 와서 자본주의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생산단계로 넘어가는 것이고, 그게 안된다면 단기적으로 힘의 불균형을 인위적으로라도 규제해야 한다. 이 규제의
핵심 두 가지가 금융규제와 노사관계 규제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 브레턴우즈체제를 위한 두 가지 규제에 대한 논의를 이미 유럽에서 제기했다. 유럽의
자본주의는 이 두 규제 안에서 커왔던 자본주의고, 미국과 영국이 이 체제를 받아들이려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치열한 싸움이 붙을
것이다.”

 

- 그러면 향후 세계 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는가.

“신 브레턴우즈 체제 논의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G20국가가 참여하게 된다. 이것만 봐도 마르크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권력이 필연적으로 분권화 된다고 이야기했다. 전후 1944년 브레턴우즈체제가 만들어졌을 때는 미국이
최정점에 있는, 말하자면 G1체제였다. 그 다음 플라자 합의 때 미국에 독일, 일본이 들어간 G3체제가 됐고 나주에 이것이 G7이 됐다. 이후
새로 자본주의화한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어서 G8체제를 꾸리다가 이것으로도 세계 경제가 통제가 안 되니까 G20까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점점
세계 경제 권력이 분산이 되고 민주화된 것이다.

 

오바마도 과거에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독점적 지위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다극화되고 경제 권력이 분산된 경제체제가 이번 신자유주의 붕괴 이후 맞게 될 새로운 경체체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본다면 국내
경제 구조도 보다 민주화된 체제에 맞춰서 개편돼야 살아남고 발전을 할 수 있다.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가져오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를 정책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밝힌 경제법칙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의지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아무리 ‘강부자 정책’을 시행하고 싶어도 현재의 물적 조건이 그것을 좌초시킬 것이란
이야기다.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수정하는 흐름으로 나가는데 우리 정부만 반대로 가기 힘들다. 역사적으로 물적 조건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인간
의지를 시험하고 가르치고 수정시킨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구조적으로 혼자서는 할 수 없다. FTA만 해도 우리만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다. 끝까지
이명박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파국이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공황은 생산이 과잉이고 소비가 과소인 상태다. 구조조정을 통해 과잉 상태를 해소해야 하는데 공급 부분은 정부가
이자율 등을 통해 기업을 도산시킬 수 있다. 다음은 소비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이 임노동자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200만 중
임노동자가 1600만이고 자영업자 200만을 더하면 1800만, 이들이 가장 큰 소비계층이다. 이들의 실질 소득을 늘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 인프라를 늘리고 교육과 의료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정책을 펼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소수에게는 이런 정책들이 불편한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 있는 <자본>, 읽은 사람 몇이나
될까”

 


  

ⓒ 이승훈

강신준

- 국내는 마르크스 경제학 지위가 열악하다.

“학계만 봐도 한국경제학회에 3000명 정도 가입돼 있는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들이 1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에 자리잡은 사람은 40명 정도다. 40대 밑으로는 마르크스 경제학 계통이 없다. 진보진영 학맥이 끊길 위기다. 후학들이 계속
나와야 사회여론이라는 것도 균형이 맞는 것인데….”

 

- 서울대에서도 김수행 교수 후임을 채용하지 않았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학생들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과학 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 수업은 학점
따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생각한다. 교수들도 하나 같이 ‘기업이 원하는 품성·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1학년부터 소위 ’스펙’을 갖추는 데 혈안이 돼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개인화된 대학의 단면이다. 그러니 취직에 도움 안 되는
정치경제학이 인기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

 

-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

“1981년 독일 유학을 준비하면서 보니까, 독일 대학 경제학과 커리큘럼 중 6분의 1이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이것을 마쳐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독일 경제학 전공 대학생들은 모두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한 셈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사회 중견에 자리잡고
있다. 또 마르크스가 지향했던 민주주의 사회를 정강정책으로 채택한는 사민당이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인 공공노조와 금속노조가 있다.
각각 25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독일 사회는 좌우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본다. 이번 경제
위기로 우파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좌파에 좀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론도 많이 팔리고 관심이 늘 수밖에 없다. 또 진보적
재단들과 정당 산하 연구소 등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을 채용해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한다. 진보적인 학문을 해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공부하는 사람들도 계속 나오고 학문적 업적도 계속 쌓여갈 수 있다.”

 

- 하지만 지난 봄 <교수신문>에서 학회지나 계간지 편집위원들을
상대로 광복이 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을 물었더니 마르크스의 <자본>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과연 자본론을 읽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었어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어렵다고 정평이 난 책이니까. 그런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좌우를 나누는
데 중심이 됐던 상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중요성 때문이었다면 연구저작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자본 해설서조차도 저와 김수행 선생 등이
쓴 3권밖에 없다. <자본>에 대한 과학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 국내의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 내에도 다양한 분파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로 뭉칠 수 있어야, 즉 연대의
원리가 발휘돼야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노동운동은 차이의 원리만 작동한다.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의 목표·수단을
밝힌 강령을 놓고 합종연횡을 통해 연대해야 하는 것인데, 강령을 밝힌 정파가 거의 없다. 분파간 대립도 강령에 목표·수단을 추가하고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 분점을 위해서 생긴다. 과학에 기반한 강령이 없는 노동운동의 분파는 권력 쟁취 조직일 뿐이다.”

 

- 진보 정당들도 분열했다.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오면서 강령을 두고 논쟁하지 않았다. 종북주의 논쟁도 강령 차원이
아니었다. 각 정파의 목표가 어떤 점이 다르고 수단은 무엇이 다른지 논쟁하지 않았다. 결국 목표와 수단을 놓고 분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놓고
분당한 것이다. 지금 밖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강령적 목표, 전술적 수단에 있어서 다른 정당이라고 보지 않는다. 강령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뭉치는 정당은 분파일 뿐이고 운동세력이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허상일 뿐이다. 진보정당이든 노동운동이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과학에
기반한 정파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 과학적 강령 논쟁이 없고 노선투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적 인식이 모자라서다. 우리 같은 학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일찍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연구성과를
내서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산을 충분히 연구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 일본에서는 공산당원이 크게 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똑같은데
우리에겐 이런 현상이 없다.

“진보세력이 아직까지는 믿음직한 세력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잘 수습해서 대안세력으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면 좋아질 것이다. 공산당은 역사가 오래됐다. 거긴 사람 중심이 아니다. 강령에 따른 행동을 해왔고 구조조정 때도 가장
열악한 조선사업장 등에 먼저 결합해 헌신적으로 행동했다. 경제가 좋을 때는 대안세력이 아니라고 보였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대안세력으로 각광받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역사를 쌓아야 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영국 정당이 근대민주주의로 넘어왔을 때 토리당·휘그당 두 귀족정당밖에 없었다.
노동당은 정당도 아니었는데, 이 눈꼽만한 것이 거대정당이 될 것이라고 그 시대에 누가 생각했겠는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이 땅의 ’88세대’ 젊은이들에게

 


  

ⓒ 이승훈

강신준

- 현실을 너무 낙관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노동운동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적 법칙 때문에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노동운동을 없애면 자본가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자본>에는 노동자정당이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기록돼 있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업적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도 노동자 당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낙관을 가질 수 있다.”

 

- 마지막으로 ’88만원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1949년 미국에서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창간한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권두 논문을
아인슈타인이 썼다. 제목이 ‘왜 사회주의인가(Why Socialism)’였다. 아인슈타인이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적으로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개인주의 사회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안 갖춰진 나라에서는 경제적
구조상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경제관계는 교환관계다. 따라서 반드시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서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와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류의 재테크 서적이
전부다. 개인적 존재로서의 ‘경제인’만 강조하면서 혼자 잘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옆 사람을 돌아봐야 한다. 그걸 말하는 책이 <자본>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경제행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밝힌 책이다. 아인슈타인도 이 점을 지적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고, 그것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도 물론 고민해야 하지만, 옆사람과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열정의 5분의 1정도만 나눠준다면 훨씬 좋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교육이 조금이라도 됐다면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부결시켰겠느냐.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법이 자본론 안에 있는데 단 한 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상품 교환관계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환관계는 사회적 합의에 따르는 것이까, 이것을 바꾸는 것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을 위해서는 연대를 해서 힘이 세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지지하고 회사에 취직하면 노동조합에 가입을
해야한다. 그런 조건이 안 된다면 하다 못해 시민단체, 연대를 위해서 활동하는 단체들에 다만 얼마라도 기부라도 하자. 이것만이 지금보다 좀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마르크스는 절대로 혼자서 잘 살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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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은근한 중도를 지향함…..ㅋㅋ 절대 오해 금물 !!!